포스테키안

2019 겨울호 / 알리미가 만난 사람

2020-01-30 67

알리미가 만난 사람 / 김한솔 PD님과의 만남

‘추적 60분’, ‘임진왜란 1592’는 필자가 고등학생 시절 재미있게 보았던 프로그램이다. 특히 이 프로그램들은 내가 빠져들 수밖에 없는 몰입감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명 독자들도 한 번쯤은 접했을 법한 프로그램으로, 낯설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이번 알리미가 만난 사람은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신 김한솔 PD님이시다. 2004년, KBS에 입사하여 인터뷰 일자를 기준으로 10일 뒤면 17년 차 연출가가 된다고 자신을 소개하신 김한솔 PD님을 함께 만나보자.  

인터뷰/ 정채림 알리미     글/ 정세빈 알리미

# PD, ‘김한솔’

김한솔 PD님께서 어떤 계기로 PD의 길을 걷게 되셨는지 궁금했다. PD님께서는 가장 막연하게 어떤 걸 만들어서 보여주고 싶었다며 말을 이어 나가셨다.

그래서 방송 쪽의 일을 생각해 보았던 것 같아요. 16년 전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어떤 걸 만들어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 치기 어린 마음도 있었어요. 또 정말 막연히 멋진 직업을 가지고 싶었어요.(웃음) 다른 직업도 충분히 멋있지만 제게는 연출가, PD가 멋진 직업으로 다가왔어요. 특히 그 당시에는 멋있는 PD님들이 많았거든요. 그런 생각들이 계기가 되어 대학교 때 열심히 언론사 시험을 준비해서 KBS에 들어오게 되었죠.

자신이 생각하는 ‘멋진 직업’인 PD가 되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는 김한솔 PD님. PD님은 ‘웃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하시며 일화를 들려주셨다.

제가 KBS에 입사했을 때, 여의도 공원에서 신입사원들이 다 모여 각자 앞으로 어떤 아나운서, 연출가, PD 등이 될 것인지 썼어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떤 PD가 되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배꼽 잡고 깔깔 웃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요. 항상 다큐멘터리는 딱딱하고 진지하고 객관적이어야 했죠. 그때의 배꼽 잡고 깔깔 웃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씨앗이 되어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웃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 그 의미를 풀이해 본다면  ‘새로운 장르를 만든다’인 것 같아요. 예능과 다큐멘터리를 합치는 것과 같이 장르를 합쳐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내는 거죠. 그래서 지금까지 해왔던 ‘추적 60분’, ‘역사 스페셜’이나 ‘한국사 傳’ 등의 작품들을 할 때 색다른 장르적인 느낌을 내고 싶었어요.


# 내가 가는 새로운 길

김한솔 PD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PD님의 작품이 더욱더 궁금해졌다. PD님이 말씀하신 ‘새로운 장르’를 PD님은 작품 속에서 어떻게 풀어내셨을까.

특히 역사물들을 연출할 때에는 단순히 과거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사실을 다루는 것보다 그때 그 사람들의 ‘감정’을 많이 다루고 싶었어요. ‘백제의 마지막 공주, 부여태비’라는 역사 스페셜을 제작했었는데, 여느 다큐멘터리 같았으면 백제의 어떤 마지막 공주가 있었고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고 이런 걸 다루겠죠. 저는 그보다 그분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았고 여성으로서 얼마나 슬픈 삶을 사셨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다시 돌아가 본다면, 깔깔 웃는 다큐멘터리가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어요. 공감이 가능한, 감정이 담겨있는 다큐멘터리랄까요. 제 인생작이라고 생각하는 ‘임진왜란 1592’를 다루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색다른 장르를 다뤄보고 싶어서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합쳤었던 거예요. 그래서 팩추얼 드라마(Factual Drama)라는 새롭고 낯선 용어를 가져와 보여드렸던 거죠. 덕분에 많은 시청자분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PD님의 소신대로 PD님만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PD님은 ‘임진왜란 1952’에서 극사실주의 사극을 표현하셨는데 이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을 ‘스토리텔링’이라고 하시며 말씀을 이으셨다.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팩추얼 드라마가 드라마와 똑같다고 느꼈으면 좋겠고,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정말 다르다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주 다양하게 느꼈으면 좋겠다는 거죠. 이렇게 느끼게끔 하는 가장 큰 요소는 ‘스토리텔링’에 있었을 것 같아요. 영상을 연출할 때 어떤 것을 만들고 창조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팩추얼 드라마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붙여야 했어요. 바로 ‘목격자’가 되어 당시 사건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거예요. 많은 고증과 취재를 통해서 임진왜란 당시의 사람들은 어땠을까, 이렇게 그 감정을 제가 목격해야 했어요. 쉽게 표현하자면 창작자보다는 목격자인 셈이죠. ‘당시 그 사람들은 어땠을까?’, ‘임진왜란은 어떻게 일어났으며 큰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민초들은 어떤 슬픔을 느꼈을까?’ 처럼 그들의 감정을 목격자로서 당당하게 그려냈어요.


# PD로서의 소명감

직업적 소명감이라니 굉장히 거창한데요, 그것보다 가장 먼저 PD로서 어떤 것을 만들 때마다 시청자들이 재미있다고 했으면 좋겠어요. 가장 큰 건 ‘재미’인 것 같아요. 모든 분들이 제 작품을 즐겁게 보면서 같이 웃고 울고 분노할 수 있는, 한 마디로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조금 더 포괄적으로 PD로서의 소명감을 말씀드린다면, 그 ‘재미’ 안에 ‘통찰’이 들어가 있는 작품을 만드는 거예요. 제 작품을 통해 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표현하고 그 안에 이 사회에 대한 통찰을 넣는 거죠.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통찰을 던져주는, 그런 것들이 제 직업적 소명인 것 같아요. 재미는 아주 맛있는 요리의 장식일 것 같고, 음식의 영양가는 통찰, 메시지 이런 것들이겠죠. ‘임진왜란 1592’가 그 두 가지를 모두 충족했던 것 같아요. 1편이 ‘조선의 바다에는 그가 있었다’예요. 지금까지 임진왜란을 생각하면 항상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잖아요. 그럼 ‘이순신이 있었다’가 아닌 ‘그가 있었다’고 한 이유는 뭘까요. 제가 목격자가 되었을 때, 이순신 장군님뿐 아니라 그 밑에서 노를 젓던 격군들의 모습도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라는 대명사를 쓴 거예요. 제 스스로 ‘임진왜란 1592’라는 작품을 통해 임진왜란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던져보고 싶었던 거죠.

# 전국의 독자들에게

PD님께선 마지막으로 포스테키안 독자분들, 특히 진로를 고민하는 수험생분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고 하셨다.

아마 이 인터뷰를 보실 분들은 대부분 수험생이실 것 같아요. 진로를 고민하는 수험생분들에게 ‘지금 뭐가 될지 몰라도 된다.’라는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저도 몰랐거든요.(웃음) 아주 먼 훗날 알게 된 거죠. 불안해 할 필요는 없어요. 무엇이든 다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 마음속에 귀 기울인다면 자기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걸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진로가 고민되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고민을 많이 하시되, 너무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웃음)

비록 필자가 직접 인터뷰하지는 못했으나, 인터뷰 내내 많이 웃으셨던 김한솔 PD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PD님께서 말씀하신 ‘재미’와 ‘통찰’을 주시기에 충분한 분으로 느껴졌다. 좋은 말씀들을 다 담지 못해 아쉽지만, 현재 PD님께서 준비중이신 영화 <귀선>을 포함해 향후 PD님의 작품들로 PD님께서 던지시는 통찰과 메시지를 느껴보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알리미 24기 화학공학과 18학번 정세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