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19 겨울호 / 포스텍 에세이

2020-01-30 136

포스텍 에세이 / 창의력과 영감

“수학을 잘하는 비결은 뭔가요?” 많이 받는 질문이다.
포스텍 학생들도 같은 질문을 하는데, 대답이 어렵다.

머리 좋다는 것과 논리적이라는 것

얼른 대답을 못 하고 머뭇거리면 사람들은 보충 질문도 해 준다. “기억력이 뛰어난 것이 수학 잘하는 데 더 중요한가요? 아니면 논리적이고 문제를 잘 푸는 것이 더 좋은가요?” 선한 의도와는 달리 이런 질문이 나를 더 복잡한 생각 속으로 몰아넣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대답한다. “수학을 잘하려면 해당 분야의 지식과 여러 기법들을 모아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하고, 그걸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머릿속에 잘 정리해야 합니다. 그러니 기억 능력은 반드시 좋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정리한 자료와 기법들을 깊이 이해하고 뽑아내 잘 조합하여 사용하여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므로, 논리적인 문제 해결 능력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정직한 대답을 드렸지만, 사람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응, 결국 처음부터 다 갖추고 태어나야 한다는 말이지. 참, 쓸모없는 대답이네.’ 라고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떠나가는 그들을 붙잡지 않지만, 나는 그들이 (1) 수학을 잘하려면 어느 정도의 기억력과 추론 능력, 또는 재능이 필요한가? (2) 그런 재능은 후천적으로 배양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을 더 했어야 할 것 같다.

Kolmogorov School

1960년대 옛 소련(Soviet Union) 시절, 세계적인 수학자 콜모고로프 박사는 전국을 돌며 러시아의 미래를 떠받칠 인재들을 발굴하여 수학 영재학교를 시작했다. 오랜 기간 동안 세계적인 수학자들을 다수 배출한 이 학교의 학생 선발기준은 학생 자신이 속한 고등학교의 상위 10%였다. 이 기준에 맞는 학생은 얼마나 될까? 러시아의 인구가 1.4억 정도라고 하니 주먹구구식 계산으로 매년 14만 명 정도는 영재학교에 들어갈 만 하단 말이겠다. 우리나라로 치면 5만여 명 정도? 물론 이건 입학 자격 얘기일 뿐이지만, 그래도 기준이 꽤 너그럽다는 느낌이다.

기초 쌓기, 연구 방법 수립하기

그렇다면, 콜모고로프 영재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은 어떠했을까? 이 점은 나도 궁금했는데, 다행히 콜모고로프 스쿨 출신 수학자들 중 몇 분과 공동연구를 하는 인연을 가진 덕에 학교 운영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교수진의 기본 교과목 강의는 여느 학교와 비슷했지만, 콜모고로프 스쿨의 특별한(?) 부분은, 이미 성공한 유명 수학자들인 교수들로 학생들을 만나 수학을 포함한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점이었다고 한다. 내 공동 연구자들은 교수님들의 세미나와 개별 접촉을 통해 가장 많이 배웠다고 했다. 기초는, 스승이 좋아하는 분야의 지식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배우며, 기법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재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쌓았다는데, 그럼 본격적인 연구 수행은 어떻게 했을까? 그것 역시 스승의 문제해결 방법을 보며 자신에게 맞는 체계를 찾고, 그에 따라 차근차근히 해 나갔다고 했다. 너무 평범한가? 그러나, 그들이 회상하는 성공 비결은 이것밖에 없었다.

창의력과 영감도 노력으로

위대한 스승과 동료를 보다 많이 만나는 행운을 누렸음에도, 창의력에 관해서는 내가 아는 유형이 하나밖에 없다. 차례대로, (1) 해결하고 싶은 과제를 만나고 (2) 문제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3) 자신의 기초 지식을 점검하고 (4) 문제 해결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줄기차게 시도해 보는 데에서 발현되는 창의력(creativity)과 영감(inspiration), 그리고 그 결과인 과제의 해결. 그것이 내가 본 유형이고, 이것 말고 다른 유형은 아는 바가 없다. 내 스승 한 분은(필즈상 수상자이기도 했다) 오래전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과제 하나를 우리들에게 소개하며 별것 아닌 듯 말씀을 슬쩍 흘렸다. “나는 이 문제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난 10년간 생각해 봤지만, 아직도 어렵다는 느낌은 들지 않거든.” 10년이나 생각했음에도 풀지 못했지만 어렵지 않다니! 그분께는 ‘잘 안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아직도 흥미롭고 풀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잠시 좀 막힌 것뿐’이라는 느낌이었던 모양이다. 이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스승은 또 다른 아이디어가 생겼기에 그걸 시도해 보겠다면서 세미나를 열었고 모인 제자들에게 당신의 착상을 설명하며 토의를 시작했다. 매번 문제 해결에 이르지 못하고 세미나가 끝나곤 했지만, 그런 실패를 당연하게 여기면서 마쳐야 했던 세미나는 늘 유쾌한 분위기였다. 그렇게 2주 정도 되었을 즈음 스승은 그 과제를 해결했다! 그건 ‘괴력의 발현’이었다. 사실은 영감, 즉 창의력의 발현을 눈앞에서 본 것이었는데 그때 받은 충격은 신선하고 컸다. 이것이 내가 내 제자들과 운영했던 세미나의 원형이었고, 목표하는 수학 연구의 성공 가능성이 크지 아니함에도 시도와 노력 자체를 즐길 수 있었던 동기였다. 천재 스승님의 수준에 감히 견줄 수는 없지만, 우리도 영감이 번뜩이는 순간을 경험했고 나름 내세울 만한 업적도 얻을 수 있었다.

이젠 그대 차례다

고교 동급생 중 상위 10%에 든다면, 콜모고로프 교수는 그대가 충분한 재능을 타고났다고 말한다. 콜모고로프식 교육 환경은 포스텍이 제공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은 기초를 쌓으며 영감이 번뜩일 때까지 유쾌하게 노력해야 할 단계이고, 이건 이제 그대의 몫이다. 영감이 언제 어떻게 번뜩이게 되는지 설명할 능력은 내게 없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으면 영감이 오지 않고, 노력을 많이 할 때 영감이 발현되었던 경험은 확실히 있다.

글/ 김강태 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