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0 가을호 / 포스텍 에세이

2020-10-20 70

직업적 여행을 떠나기 

 

내게는 좋아하는 샹송이 하나 있다. 엘자 Elsa라는 프랑스 가수의 ‘Chaque jour est un long chemin’이라는 곡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매일 매일은 긴 여행이지’로 번역된다. 사실 chemin은 길, 여정을 뜻하는 단어이다. 가고 싶은 곳을 정하고, 목적지를 향해 자신이 걸어갈 길을 선택하며 때로는 여정을 변경하기도 하는 일련의 과정은 매일 매일, 그리고 그 매일들이 축적된 자신의 삶을 여행과도 같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글을 써 내려가는 나는 직업적 경로 Career Path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었던 박사학위를 받은 지 정확히 10년이 되었다. 지금까지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서 앞으로의 항해를 위한 항로를 재확인하는 시간을 공유하고자 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직업 및 직분에 대한 관심은 인생의 우선순위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을 것이다. 대학교에 진학할 때에는 이에 대한 고민이 상대적으로 덜 진중하기도 하다. 입시 과정은 물론 치열하지만, 대학과 전공의 선택은 ― 나의 정체성보다는 성적과 경쟁률 등 외부적 요소들을 고려해 현실적인 타협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내가 ‘선택되는’ 처지에 놓인다는 점에서 ― 온전히 주체적인 결정이 되기는 어렵다. 나 역시 로스쿨 시대 이전, 문과의 대표적인 전공이었던 법학과에 관성적으로 입학했다. 이후 대학 생활을 통해 처음으로 ‘나’라는 사람의 개성과 정체성을 스스로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사실 초중고 과정에서는 이미 정해진 틀 안에서 상당히 고정적인 패턴으로 살았기에 ‘나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갈 기회와 시간이 부족했다. 2학년 겨울방학, 주위 동기 및 선후배들이 신림동 고시촌을 향할 무렵 진로의 갈림길에 서 있었던 나는, 법대생의 압도적인 다수가 선택했던 사법시험을 치르지 않기로 결심하고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쓴 채 대학원 진학을 일찌감치 결정했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이른바 헌·민·형(헌법, 민법, 형법)이 아닌 (‘먹고 사는 것’을 염려해야 하는) 비인기 전공인 법철학을 선택해 법학자로서의 길을 걸어가기로 한 것은 22살의 나에게 있어서 나름의 ‘결단’이었다. 돌이켜 보면 이는 사실 내가 제일 잘하기 어려운 길을 의식적으로 선택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난 그저 ‘시험’을 잘 보는 아이였지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시험은 요령껏 전략적으로 준비하면 잘 볼 수 있는 것이었고, 시험을 준비하면서 얻은 지식은 금세 휘발되어 버리곤 했다. 더욱이 시험의 결과로서 ‘등수’에 대한 욕망은 순간의 성취감을 안겨 주기도 했지만 이에 대한 집착이 나의 정신과 영혼에 상흔을 남겼다. 진정한 공부 역량을 기르고, 나의 자아가 담겨 있는 글을 쓰며, 이러한 축적의 과정에서 배우고 가르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시작된 대학원 생활은 고통스러웠다. 공부의 어려움보다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사회생활의 낯섦에 따른 것이 컸다. 하지만 박사 학위를 받고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학자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과정은 훨씬 더 힘겨운 시간이었다. 대학에 진학해 진로를 설정하는 것이 입신(立身)을 위한 기초 토대를 마련하는 작업이라면, 이후 적어도 10년의 세월은 자신이 선택한 길에 책임을 지기 위해 갈고닦는 수련의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때때로 맞닥뜨리는 절망감으로 인해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한 후회의 마음이 고개를 들기도 했지만, 그러한 의구심은 나의 역량이 한뼘 한뼘 자라나고 있음을 확인할 때마다 사그라지곤 했다. 이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과 같이 객관적인 성취로만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 속에서 더욱 강렬하게 경험되기도 한다. 어느 날 문득 걸려온 전화에서 선배 교수가 “얼마 전 네 논문을 읽어보았는데, 정 박사만이 쓸 수 있는 글이었어. 박사 후에 더 많이 성장하고 있더라.”와 같은 격려 인사를 해 주었을 때, ‘아, 다행이다. 이 길을 계속 걸으면 되겠구나.’라는 안도감은 그간의 여독을 말끔히 씻어내 주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분야의 꽃밭을 일궈 가면서 전문가로 성장해 가는 과정은 점점 재미있는 것이 되기 시작했다. 특히 우연이 우연으로 그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과정이 그러했던 것 같다. 대법원 산하 연구 기관에서 미래연구 관련 주제의 연구 책임자가 된 계기는 카이스트의 미래학 연구·교육을 담당하는 대학원에서 연구할 기회로 이어졌다. 또한,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뜨거운 화두가 되었던 2016년, 카이스트에 소속된 법학 교수라는 이유로 섭외된 학술 콘퍼런스에서 <인공지능과 법적 쟁점>을 주제로 시도, 아니 도전했던 발표는 관련 연구 과제 선정, 학회 창립 참여, 공저 출간, 그리고 포스텍으로의 이직과 <인공지능과 법>의 교과목 개설로 연결되는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되돌아보면 이러한 ‘운명적 우연’의 에피소드는 끝이 없다. 몇 년 전 어느 콘퍼런스에서 블록체인 기반 가상국가 프로젝트인 비트네이션을 설립한 수잔 템펠호프의 통역가가 갑작스레 공석이 되어 엉겁결에 통역을 맡았던 나는 올해 <블록체인과 민주주의>로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나아가 2017년 포항 지진을 경험한 이후, 재난법 분야를 새로운 텃밭으로 일구기 시작했던 나는 코로나19의 시대에서 또 다른 연구를 기획, 진행 중이다. 

그 당시에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혼돈 속에 놓여 있었지만, 사소한 인연이든 우연적인 사건이든 성심을 다해 임하면 멋진 일이 펼쳐질 수 있다는 깨달음이 지금의 내게는 있다. 궂은 날씨든 우연한 만남이든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을 마주하는 것이 자유 배낭여행의 참 재미인 것과 같이 직업적 삶의 여정 역시 그러하다. 외부적 기대에 나를 맞추기보다는 나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삶의 모습을 그려보기, 정점에 도달하기 위한 목표 지향적 노력에 매몰되지 않고 와인이 에이징의 시간을 통해 숙성되듯 자신의 때를 기다리기, 매일 매일의 길을 꾸준히 걸어나가면서 우연적 사건을 기대하는 여유를 가져보기…. 이 정도가 30대 후반, 여전히 미성숙하지만 그간 소박한 깨달음을 얻은 내가 전하고 싶은 것들이다. 

 

인문사회학부 교수 정 채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