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0 봄호 / 복면과학

2020-05-13 19

복면과학 / 죽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사나이 레프 다비도비치 란다우

여러분이 알고 있는 물리학자는 누군가요?

대부분의 사람은 알버트 아인슈타인, 리처드 파인만, 스티븐 호킹 등

저명한 과학자들의 이름을 언급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못지않은 엄청난 업적을 냈지만,

시대적 한계와 불운의 사고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한 과학자가 한 명 있습니다.

그는 바로 196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레프 다비도비치 란다우Lev Davidovich Landau입니다.

현대 물리학의 많은 분야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이론들을 밝혀내고

중요한 축을 세운 당대 최고의 천재 과학자, 란다우의 생애와 업적을 한번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란다우의 청소년기

13세에 고교 과정을 마치다

란다우는 1908년 지금의 아제르바이잔 수도인 바쿠에서 태어났습니다. 공학자인 아버지와 의사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수학과 과학 분야에 천재성을 나타냈고 13세에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김나지움 Gymnasium을  졸업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어린 그를 대학에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해 바쿠 경제학 학교에 보냈으나, 수학과 과학을 사랑하는 란다우는 1년 후인 14세에 바쿠 대학교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물리학을 공부합니다. 19세에 레닌그라드 주립 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1929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럽에서 유학하게 됩니다. 이 1년 반 동안의 경험은 란다우를 물리학계의 핵심 인물로 우뚝 설 수 있게끔 하였습니다. 그는 양자역학의 선구자였던 닐스 보어, 폴 디랙, 볼프강 파울리와 함께 일을 하게 되었고 특히, 코펜하겐의 닐스 보어 연구소에서 보어와 함께한 경험을 통해 큰 감명을 받아 평생 보어를 스승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란다우는 대학원생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유학 기간 도중 양자전기역학과 상대론적 양자 이론에서의 불확정성의 원리, 금속에서 축퇴된 이상적인 전자가스의 양자 역학적인 설명 등 양자역학에 관련된 중요한 논문들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게 됩니다.

란다우의 업적

그의 이름을 딴 발견들과 저서

란다우는 화려했던 유학 생활을 끝내고 1931년 레닌그라드로 돌아와 여러 연구소에서 직책을 맡으며 일을 하다 1935년 하리코프에서 교수가 됩니다. 이 기간에 그는 가장 심도 있고 다양한 연구 활동을 하여 그의 이름을 딴 란다우 반자성, 란다우 준위, 란다우 감쇠 현상과 초전도체를 이해하는 데 기본이 되는 긴즈부르크-란다우 이론, 그리고 양자 역학 계산의 기본 수학 도구인 밀도 행렬 등을 발견해 냅니다. 그중 대표적인 업적인 ‘란다우 반자성’에 대해 간단히 알려드리겠습니다. 균일한 자기장 속에서 자유전자는 원운동을 하는데, 이 원운동에 따른 자기모멘트는 외부로부터의 자기장과 반대 방향이 됩니다. 이는 고전적인 전자기유도에서의 렌츠의 법칙을 따른 것으로, 다수의 전자가 모여있을 경우 고전 역학에서는 자기모멘트의 합이 0이 됩니다. 그러나 양자 역학에서는 전자의 궤도가 양자화되기 때문에 작은 모멘트가 남는 사실을 란다우가 발견했고, 이를 란다우 반자성이라 합니다.

란다우 반자성의 자화율 XL에 대한 수식

란다우가 노벨상을 받은 업적은 모스크바의 물리학 문제 연구소에서 액체 헬륨을 연구하던 1927년부터 시작됩니다. 당시 연구소의 소장은 저명한 물리학자인 카피차 교수로, 천연의 헬륨 가스를 절대온도 4도로 냉각하면 액화되고 절대온도 2도 정도로 더 냉각하면 아주 특이한 특성을 가진 새로운 상으로 전이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대부분의 연구자가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원자 각각의 양자화 상태들을 고려했던 반면, 란다우는 전체 유체의 양자화된 운동 상태를 기술해 유체의 들뜬 상태들을 ‘준입자’라 부르는 어떤 가상 입자의 움직임으로 기술했습니다.

실험을 통해 준입자의 기계적 특성을 추론해 나가면서 그는 액체 헬륨 내에 보통의 음파 외에 2차 소리가 존재함을 발견했고 가벼운 동위원소의 액체 상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극저온에서 액체 헬륨의 초유체현상에 대해 수학적으로 이론을 세웠습니다. 란다우는 이 연구를 통해 훗날 물질의 응축, 특히 액체헬륨에 대한 선구적 이론을 발견해 낸 공을 인정받아 노벨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레프란다우 저서 (Course of theoretical physics)

란다우는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학생들을 대상으로 ‘최소한의 이론Theoretical minimum’이라는 프로그램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는 물리학자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하는 기본적인 실력을 검증하는 것으로 총 9개의 시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미적분, 텐서해석, 군론 등과 같은 시험과 더불어 란다우 강좌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물리학에 대한 시험입니다. 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오직 43명의 사람만 통과했을 만큼 란다우가 생각하는 물리학 이론의 기초는 아주 견고했습니다. 자신의 강좌를 집합하여 ‘이론 물리학 강의록Course of theoretical physics’을 집필하였는데 이는 명실상부한 현대 이론 물리의 백과사전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란다우의 시련

억압된 사회와 불의의 사고

얼핏 보면 승승장구한 것 같은 그의 연구 과정은 절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냉전 시대 소련의 박해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1938년, 스탈린이 일으킨 소련 공산당 대숙청 당시 란다우는 독일 간첩이라는 누명을 받아 구속되었습니다. 카피차 등의 동료 과학자들이 그의 결백을 주장하고 당시 최고 권력자에게 탄원을 넣는 등의 노력을 통해 란다우는 1년 반 정도의 감옥생활 끝에 마침내 석방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어려움 속에서도 연구를 계속해 온 란다우는 1962년 1월 7일, 트럭과 정면충돌하는 큰 교통사고를 당해 한 달 이상을 식물인간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를 살려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전 세계 물리학계를 하나로 뭉치게 만들어 냉전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소련과 서방세계의 의료진들이 함께 노력해 그는 57일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목숨을 구했습니다. 당시 물리학자 사회에서 그를 어떻게든 살리려고 노력한 과정을 다룬 ‘The Man They Wouldn’t Let Die(죽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사나이)’라는 책이 집필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상황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뇌 손상으로 고통받던 란다우는 과학계로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사후에는 노벨상을 수여하지 않는다는 노벨 위원회의 방침에, 란다우가 죽기 전에 노벨상을 수여해야 한다는 청원이 이어졌습니다. 이에 사고를 당한 해에 란다우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지만, 시상식에는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사고 후유증에 고생하던 란다우는 1968년 60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냉전 시대의 소련의 과학자가 아니었다면,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다양한 연구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을 레프 란다우. 이 글을 읽은 여러분들은 지금부터라도 그의 업적과 생애를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출처

https://www.scienceall.com/%EB%9E%80%EB%8B%A4%EC%9A%B0%EB%B0%98%EC%9E%90%EC%84%B1landau-diamagletism/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ourse_of_theoretical_physics_by_Landau_and_Lifshitz.jpg

알리미 25기 무은재학부 19학번 조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