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0 봄호 /Science black box

2020-06-01 108

Science black box / 경쟁의 과학

과학을 발전시켜 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과학의 역사를 보면 과학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발전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과학자들 간의 치열한 논쟁을 통해 새로운 과학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잘 아는 양자 역학의 입자성과 파동성에 대한 논쟁과 미적분학에 대한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논쟁을 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경쟁으로 이룬 과학의 발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요! 이번 호에서는 ‘경쟁의 과학’이라는 주제로 경쟁을 통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결실을 본 사례들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조너스 소크 vs 앨버트 세이빈

먼저 소개할 두 과학자는 소아마비 사백신을 발명한 조너스 소크와 소아마비 생백신을 발명한 앨버트 세이빈입니다. 1952년 미국에서는 3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소아마비로 죽어 나갔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소아마비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과학자 덕분입니다. 1950년대 많은 국가에서 소아마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아마비 백신과 치료법 개발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 백신을 연구하던 조너스 소크는 1955년에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또한 강력한 사백신을 세상에 공표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소크는 많은 제약 회사의 좋은 제안에도 불구하고 신약 특허를 포기하여 많은 사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제조사의 문제로 오염된 백신이 유통되어 사람이 죽는 일이 발생했는데요. 이때 1956년 앨버트 세이빈이 개발한 생백신이 소크의 백신을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크와 세이빈은 백신을 개선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며 계속해서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경쟁 구도에 선 사백신과 생백신은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생백신은 3번이나 접종해야 하는 사백신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접종 횟수가 적어 소아마비 예방 접종의 주 대상인 어린아이와 후진국 사람들에게 유용합니다.

하지만, 백신 내 병원체에 의한 발병 위험성이 존재해 240만 명 중 한 명꼴로 소아마비에 걸린다고 합니다. 그에 반해 사백신은 아직 백신에 의해 소아마비가 발병한 경우는 단 한 사례도 없었지만, 사탕이나 시럽 형태로 투여하기가 어렵고 여러 번 접종이 필요해 번거롭고 높은 비용이 뒤따른다고 합니다.

이러한 단점들을 개선하는 노력이 계속되어 백신 배포 2년 만에 소아마비 발병이 이전보다 90% 감소하였습니다. 그 결과, 1979년 미국에서는 소아마비가 더는 발병하지 않는다는 퇴치 판정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백신 개발자들의 이러한 꾸준한 경쟁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한 모습으로 지낼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이미지 출처

1. (좌)조너스 소크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Dr_Jonas_Edward_Salk_(cropped).jpg

2. (우)앨버트 세이빈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lbert_Sabin.jpg

닐스 보어 vs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혹시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이 말은 닐스 보어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양자 역학에 대해 논쟁할 때 아인슈타인이 한 말로 유명합니다. 당시 양자 역학에 대한 논쟁은 보어의 코펜하겐 해석이 정립되어 가면서 이를 표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중, 아인슈타인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코펜하겐 해석은 양자 상태에 대한 모든 정보가 파동 함수에 들어있으며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이 해석을 주장하던 보어는 양자 역학에 확률이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고 많은 학자 역시 보어의 주장에 동의하며 물리학과 화학의 중요한 미해결 문제를 위해 개최되는 ‘솔베이 회의’가 그를 인정하고 축하하는 자리가 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솔베이 회의에서 보어의 발표가 끝나자 아인슈타인이 그 해석을 반박하며 나섰던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불확정성 원리를 인정하지 않았고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논리적이고 철학적으로 반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코펜하겐 해석을 반박하면서 아인슈타인은 사고 실험을 통해 불확정성을 배제할 수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이 사고 실험을 간단히 설명하면, 먼저 빨간색과 파란색 공을 하나씩 상자에 넣고 눈을 감은 실험자가 하나를 고르게 됩니다. 상자의 뚜껑을 닫고 실험자가 눈을 떴을 때 꺼낸 공이 빨간색이라면 상자에 있는 공은 파란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고 실험에서 색으로 표현한 것처럼, 실제 세상에서도 물리량의 상관관계를 통해 불확실성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요. 하지만 이 사고 실험으로는 코펜하겐 해석을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실험은 ‘실재’라는 말을 중의적으로 사용했고 후에 다른 과학자 존 스튜어트 벨에 의해 아인슈타인의 주장이 양자 역학의 예측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논쟁이 6일 동안 반복되자 동료 과학자는 아인슈타인에게 ‘당신은 당신의 이론을 반대했던 적들과 같은 방법으로 양자 이론을 반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코펜하겐 해석이 현재의 양자 역학을 서술하는 표준이 되었지만, 아인슈타인의 공격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양자 역학의 이해가 더욱더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보어와 아인슈타인은 과학자로서 가까운 친구였기에 우호적인 관계로 논쟁이 진행되었고, 더 깊은 토론을 거쳐 지금의 양자 역학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경쟁을 통해 더욱 발전할 수 있었던 과학 이야기 두 가지를 담아보았는데요. 지금도 많은 과학자가 계속되는 경쟁 속에서 과학의 꽃을 피워 나가고 있을 것 같습니다. 과학에 관심이 많으신 여러분들도 후에 동료 과학자들과 경쟁하며 과학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3. (좌)알베르트 아인슈타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instein_1921_by_F_Schmutzer_-_restoration.jpg

4. (우)닐스 보어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Dr_Jonas_Edward_Salk_(cropped).jpg

알리미 25기 무은재학부 19학번 김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