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0 여름호 / 선배가 후배에게

2020-07-27 167

선배가 후배에게 / 나뭇가지에 앉은 새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 자기소개를 할 일이 참 많았습니다. 무슨 학과, 몇 학번, 출신은 어디고…. 다들 엇비슷한 과정을 거치면서 대학에 오게 되었을 텐데, 각자 자신만의 특징이 뚜렷하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항상 제 차례가 올 때까지 ‘어떻게 하면 나도 인상 깊은 자기소개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결국 무난하게 이름이나 나이, 학과와 같은 재미없는 정보를 나열한 뒤, 무심한 척 끝에 덧붙이게 됩니다.
“말레이시아에서 10년 살다 왔습니다.”

‘영어가 편한지 한국어가 편한지’, ‘꿈은 영어로 꾸는지 한국어로 꾸는지’, ‘군대는 안 가도 되는지’ 정도가 자기소개 이후 받는 흔한 질문들입니다. “둘 다 편합니다”(‘오~’), “꿈마다 다릅니다”(‘오~’), “군대는 가야 돼요”(‘아…’) 무미건조한 답변을 합니다. 하지만 제 자기소개를 특별하게 만드는 부분은, 항상 마지막에 있었습니다. “저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합격하고 포스텍에 오게 되었습니다.”
2015년 1월 14일, 케임브리지 물리학과에서 합격 이메일이 왔습니다. 지금까지도 가장 특별했던 날짜 중 하나로 기억되네요. 제 페이스북에 있는 합격증을 보고 나서야 제 말의 진위를 파악하게 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왜 포스텍에 왔느냐고. 이 질문은 지금 봐도 기분이 상하네요.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높게 보는 질문임과 동시에, 포스텍을 비교적 낮게 보는 질문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마치 제 선택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단정짓는 질문 같기도 하고요. 공대생들이 좋아하는 ‘통계’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 어떤 대학 평가를 봐도, 그 어떤 한국 대학이 케임브리지의 순위에 근접한 적은 없으니까요. 결국엔 다음과 같은 질문이 되는 거죠. 왜 더 낮은 순위의 대학으로 온 거냐.

“새는 자신이 앉아있는 나뭇가지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는 것이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글귀입니다. 항상 제가 이뤄온 것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노력할 수 있는 원동력을 주는 문장입니다. 저는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대학교의 순위란 것은 아주 주관적인 수치일 뿐이라는 것, 누구라도 간절히 노력한다면 학벌과 같은 사회적 위치에 상관없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안정적인 삶에 취해 안일해지기 싫었고, 많이 이뤘다는 사실에 거만해지기 싫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어디보다 ‘학벌’, ‘권력’, ‘재력’과 같은 요소에 집착하는 한국의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꿈을 가진, 19살 새내기의 선택이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24살이며,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 생활 중에 위의 사항들을 다 증명했느냐고 여쭤 보신다면, 그러지 못했습니다. 재학 내내 최상급의 학점을 받은 것도 아니며, 어쩌면 제가 케임브리지에 붙은 것 자체가 운은 아니었을까 생각한 적이 오히려 많습니다. 하지만 이에 따라 두 가지는 명확하게 알았습니다.
첫 번째, 포스텍에는 ‘케임브리지 합격생’보다 뛰어난 사람이 많았습니다. 사실 포스텍 학생들이 영어만 잘했다면 다 케임브리지에 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학벌이 한 사람의 가치를 대변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저는 케임브리지를 뒤로한 제 선택을 최선의 선택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이 성장했다고 자신하며, 포스텍을 선택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누구나 대단하고 성공적인 삶을 꿈꿉니다. 대단함이나 성공은 학벌에, 또는 어떠한 사회적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는 과정에 대단함과 성공이 깃든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제가 짧은 글로 전달하고 싶었던 이야기입니다. 저 또한 제가 주장하는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승욱| 컴퓨터공학과 15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