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0 여름호 / 알리미가 만난 사람

2020-07-28 59

알리미가 만난 사람 / 이정모 관장님과의 만남

“우리가 도서관과 미술관을 가듯 일상적으로 가는 과학관을 만들고 싶어요.”

책이나 강연 등의 매체를 통해 가지게 된 관심이 진로 선택의 자양분이 되는 경우가 있다. 필자의 경우 문·이과를 선정하기 전이었던 고등학교 1학년 때 이정모 관장님의 강연을 듣고 이공계 분야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번 알리미가 만난 사람은 안양대학교의 교수를 역임하시다가 2011년부터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과학관에 이어 올해 2월부터 국립과천과학관의 관장을 맡고 계시는 이정모 관장님이다. 과학의 대중화 사업에 힘쓸 수 있어 행복하다는 이정모 관장님의 이야기를 듣고자 국립과천과학관에 방문했다.

 

#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
이정모 관장님께서는 유명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로서 70여 권의 저서를 내셨고 수많은 강연, 방송을 하셨다. 관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는 무엇이며 어떤 계기로
이 분야에 발을 담그게 되셨는지 궁금했다.

대부분의 과학과 공학 연구는 많은 조직과 기기가 필요한 큰 규모의 사업이기에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져요. 그렇다면 이 연구의 결과도 시민들의 것인데 시민들은 어떤 일이 연구되고 있는지 몰라요. 과학자와 공학자는 너무 바쁘고 그들의 언어가 시민들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연구비를 대주었던 시민들에게 연구 결과를 알려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그 사람이 바로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입니다. 사실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라는 직업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에요. 교수, 교사, 작가 등등 누구나 과학의 대중화에 힘쓰는 사람들이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가 되는 것이죠. 제 어머니께서는 공부를 많이 하시지 못했어요. 자식이 좋은 학교에 갔으니 무엇을 배웠는지 궁금해 하셔서 늘 저에게 오늘은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어보셨죠. 어머니께서 다림질하실 때 옆에 앉아서 오늘 배운 것 중 하나에 대해서 쉽게 풀어가며 얘기를 해드렸어요. 그러면 어머니께서 정말 재미있게 들으셨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아 나는 참 잘 전달하는구나!’ 그러다 몇 년 뒤, 어머니께서 양복을 사주시면서 연동 청소년 학교라는 야학에서 수업해 보라고 하셨어요. 당시엔 양복이 탐나서 수업을 하겠다 했는데 뒤돌아보니 9년 반 정도를 수업했더라고요. 유학 가서도 랩 세미나를 하면 제가 연구하는 것보다 남의 연구를 설명하는 걸 더 잘했어요. 많은 친구들이 자신의 전공을 바라볼 때 저는 커다란 그림을 보여주면서 설명하면 사람들이 훨씬 더 재밌게 듣고 이해도 잘 된다는 걸 알았죠. 이런 경험을 하며 저는 어려운 것들을 대상에 맞추어 잘 설명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어 연구자보단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 걸어오신 길
관장님의 저서와 강연의 주제를 보면 하나의 학문에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하다. 관장님은 어떤 학생이셨으며 어떻게 이런 넓은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걸까?

저는 모범생이었어요. 단 한 번도 창의적이고 엉뚱하고 남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정해진 대로 숙제도 정확히 해가며 선생님께 야단맞을 일 없는 학생이었죠. 사실 저는 성적에 맞추어서 대학에 갔어요. 심지어 생화학과가 꽃 화(花)를 쓰는 원예학과인 줄 알고 농대에 가고 싶어서 원서를 썼는데 한 달 후에 학과 점퍼를 맞춰보니 ‘flower’가 아니라 ‘bio chemistry’로 쓰여 있는 걸 보고 충격받았어요.(웃음) 그 정도로 과학에 대해 아무런 뜻이 없었습니다. 대학에 가서도 2학년 때는 경제학과, 3학년 때는 철학과, 4학년 때는 신학과에서 살았어요. 학과가 아닌 정말 큰 학문이 모인 University를 다녔죠. 저에게는 이런 경험들이 정말 좋은 자양분이 되었어요.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었고 다양한 교수님께 배웠고 학문마다 완전히 다른 사고의 체계를 경험했죠. 그 덕에 세상에 대한 다양한 관심을 가질 수 있었어요. 이공계 학생들이 인생을 살면서 조금은 브레이크를 밟으며 다른 곳에도 눈을 돌려보길 바라요. 문학, 철학, 사회학 이런 다른 사고방식들에 익숙해 지면 좋겠다는 얘기를 꼭 해주고 싶어요.게다가 지식은 엄청나게 빨리 축적돼요. 대학교 4년 동안 어떤 지식을 죽어라 쌓고자 하는 건 바보 같은 생각입니다. 그것이 몇 년만 지나면 과거가 되기 때문이죠. 대학은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쌓는 곳’이에요. 시대가 변하고 지식과 체계가 바뀌며 새로운 분야가 생겨나는데 적어도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면 뭐든지 스스로 학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 세상을 더욱더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죠?

 

 

# 만들고 싶은 과학관
구립, 시립에 이어 국립 과학관의 관장을 맡고 계시면서 과학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떤 마음이 드시는지 그리고 어떠한 길을 나아가고 싶으신지 여쭤보았다.

좋은 세상은 뛰어난 과학자가 많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과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엔 아인슈타인, 마리 퀴리, 뉴턴 등과 같은 어마어마한 과학자들이 있어요. 그들은 천재죠. 그러나 제가 아는 과학자는 천재가 아니라 엉덩이가 무겁고 끈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시민들에게 과학이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과학관은 아이들이 과학자의 꿈을 꾸게 하는 곳보다는 오히려 과학과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이 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학관은 1년에 한두 번 정도 방문하잖아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도서관과 미술관에 가듯 과학관도 일상적으로 가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국립과학관은 전국의 과학관 중에 가장 큰 과학관이에요.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 노인들이 오고 과학을 직접 해 보는 곳으로 정착시키면서 국립과천과학관을 모든 과학관이 믿고 쫓아올 수 있는 모델로 만들고 싶습니다.

 

# 포스테키안 구독자들에게
인터뷰를 마치며 관장님께 진로를 고민하는 전국의 포스테키안 구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여쭤보았다.

지금의 고등학생은 최소한 4-5개의 직업을 가지고 살게 될 거예요. 인간의 수명이 길어짐과 동시에 세상은 엄청나게 많이 바뀌어 나갑니다. 여러분의 진로에 대해 부모님께서 ‘살아보니 이런 전공과 이런 직업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해 주실 거예요. 물론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해주시는 말씀이겠지만, 부모님이 살아온 세상과 여러분이 살아갈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입니다. 부모님께 얽매이지 말고 여러분의 삶은 여러분이 살아야 해요. 그렇다고 하고 싶은 거 아무거나 하면 되겠다는 생각은 안 돼요.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알아내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으세요. 그러면 좋아하는 것을 취미로라도 할 수 있어요.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알기 위해선 많은 간접경험이 필요해요. 인터뷰 기사 보기, 사람 만나기, 여행 다니기 등이 안된다면 소설이라도 많이 보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지금 정한 진로로 죽을 때까지 가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이 첫 번째 직업이 될지언정 또 다른 꿈과 재능이 생기면 두 번째, 세 번째 그 이후의 직업으로 삼으면 되죠. 그리고 여러분은 탄탄한 사회의 투자를 받고 성장한 축복받은 세대입니다. 이에 뉴스나 신문을 보면서 세상에 관한 관심을 가지고 세상에 받은 만큼 돌려줄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긴 인생을 다양한 경험을 하며 즐겁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인터뷰하는 내내 진행을 맡은 알리미보다 말씀을 더 잘해 주셔서 ‘최고’라는 수식어가 괜히 붙은 것은 아니었구나 하고 실감했다. 필자도 인터뷰 중 이공계 학우들이 사고의 확장이 더 필요하다는 말씀에 동감하였고, 관장님의 활기찬 에너지가 전해져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인터뷰를 위해 시간을 마련해 주신 이정모 관장님과 국립과천과학관 비서실에 감사드리며 글을 마친다.

 

알리미 25기 무은재학부 19학번 조혜인